[KANON&AIR]몇 번째의 여름 이야기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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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카논과 에어에 대한 심각한 네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카논과 에어를 올클리어 한 분을 위한 이야기이니 이 점에 주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애니로 보셨어도 보는데는 큰 지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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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몇 번째 날갯짓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분명히 존재하리라 확신하는 잊어버린 수까지 포함하면, 그 횟수가 아주, 아주, 아주 큰 수라는 사실 뿐.
영원히 계속되고, 풍차 날개가 돌듯이 끝없을 것만 같았던 그 움직임이 멈췄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추락.
세상의 규칙을 따라서…

툭…………

그에게는 지금은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편의상 그를 까마귀라 부르지만 그것은 그의 이름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통칭’일 뿐, 절대 이름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까마귀’는 땅에 떨어졌다. 다시 날개를 파닥여보지만 방금 전까지와 달리 창공으로 날수가 없었다. 까마귀는 슬픔을 느꼈다. 땅에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날 수 없게 되어서도 아니었다. 까마귀는 이미 자신이 날았다는 사실마저 잊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야할 곳에 가지 못했다. 까마귀는 가야할 곳에 도달하지 못해서 슬펐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여기가 그곳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슬펐다.
“까옥-”
슬픔은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응답이 있었다.
“아우?”
까마귀는 그 소리를 향해 돌아섰다. 주홍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보였다. 아니, 여우였다. 까마귀는 그녀를 처음 봤지만 알 수 있었다. 왜 알 수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녀는 영원한 봄의 언덕에서 사는 존재였다. 기적을 통해, 영원한 봄을 얻은 존재였다. 까마귀가 떨어진 장소는 바로 그 언덕이었다. 그제야 까마귀는 깨달았다. 이곳의 시간은 바깥과 달랐다.  지금의 시간은 모든 것이 성장하는 여름임에도 그의 주변에 보이는 광경은 그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거부하고 있었다. 부드러워진 대지 위에서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연둣빛의 새싹이 보였다. 나무는 새로운 잎을 키우고 있었다. 봄에 반짝 피고 사라졌을 꽃들이 아직도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영원히,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 ‘시작점’에서 소녀-여우-는 순수한 웃음을 보여줬다.
“어서와. 난 마코토! 넌?”
마코토는 손인지 앞발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몸의 일부를 내밀어왔다. 까마귀는 생명력이 약동하는 그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가득한 여름의 생동감 있는 열기가 그녀가 있는 이곳에서는 부드러운 생명력으로 바뀌고, 아름다운 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까마귀는 그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대답했다. 조금 우스운 표현이지만,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까악-”
그러나 의미가 전달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까마귀‘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명확한 대답이 있었음은 분명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조류의 신체구조가 만들어내는 울음소리뿐이었다. 소녀는 여우지만 동시에 소녀이건만. 까마귀는 그것이 슬펐다.
“으응~ 그렇구나!”
까마귀는 놀랐다. 그녀는 그를 이해하는 것일까? 마코토가 짓는 환한 웃음 어디에도 의문의 기색은 없었다.
“아우웃~”
기지개를 쭈욱 펴면서 마코토는 까마귀 옆에 누웠다. 딸랑이는 방울소리가 났다. 그것이 신호인 양,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코토는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우, 고기만두가 있다면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이제 밖은 여름이라서 고기만두를 구할 수가 없어. 네가 조금만 일찍 왔다면 삐로랑 같이 따끈한 고기만두를 먹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까마귀는 고기만두나, 누군지 알 수 없는 삐로라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아쉽지는 않았다. 그 순간, 까마귀가 아쉽다고 여긴 것은 그저 목적지로 도달하지 못했단 것뿐이었다. 닿는다고 원하는 무언가에 다다르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까마귀는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까옥-”
이번에도 닿았다. 마코토가 까마귀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그녀의 코와 까마귀의 부리가 거의 맞닿았다. 다시 방울소리가 났다. 마코토는 잠시 동안 까마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우웃~ 좀 힘든 이야기네. 어떻게 해야 하지? 좀 힘들겠지만,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마코토는 손목의 방울을 계속해서 손으로(발일까?) 튕기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울소리가 계속해서 언덕에 울려 퍼졌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퍼져가는 소리가 사방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까마귀는 가만히 마코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또다시 불어온 바람이 연두색의 어린 풀밭에 초록의 파도를 만들어냈다. 그 흐름에 까마귀의 검은 깃털이 몇 장 휩쓸렸다.

딸랑

“아웃~ 너무 불확실한 방법뿐이지만, 나로선 이게 한계 같아.”
갑자기 까마귀의 몸이 움직였다.
“가자!”
마코토가 까마귀를 데려갔다. 까마귀는 자신이 지금 물려있는지, 아니면 안겨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동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풍경이 바뀐다.
연한 풀밭에서-
진한 초록빛의 숲.
새로 돋아나는 새싹의 공간에서-
진한 녹색의 잎사귀 사이로 만들어진 공간.
부드럽게 잘린 공간 사이로 새어드는 강렬한 빛.
열기와 더불어
반짝인다.
여름.
그 사이로 스치는 시원한 바람.
깃털은 나부끼고
밝은 주황색의 춤.
이제 시야에는
인간의 마을.
빨랐다.
두근거렸다.
왠지 좋은 느낌.
‘아마 잘 될 거야.’
까마귀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명확한 생각을 했다. 그것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져본다.
‘?’
무엇일까.
순식간에 그 느낌은 사라졌다. 까마귀는 기억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중요한 것일 꺼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제 기억나지 않았다.
빠르게 주변이 바뀐다.

인간의 마을.
누군가 있다.
“난 여기까지. 아직은… 난 만나고 싶어도 만나면 안 되니까.”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까마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만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만나러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코토는 그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 이제 가봐. 그녀라면… 도와줄 거야.”
“까옥.”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 까마귀는 통통 뛰어서 그쪽으로 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여우인지 소녀인지 애매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노 미시오는 걸음을 옮기다 멈췄다. 별 이유 없이 여름방학 중에도 입고나온 교복의 스커트가 펄럭임을 멈췄다.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미시오는 느낌을 쫒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가 혹시나 생각했던 존재는 아니다.
“아…….”
검은 무언가가 있었다.
“까마귀입니까?”
그것은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날개를 파닥이며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까마귀는 날지 못했다. 미시오는 일단은 여우와도 지내봤지만 그렇다고 수의학의 지식은 없다. 그래서 왜 날지 못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까마귀가 날개를 다쳐서 날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손을 내밀어보았다. 신기하게도 까마귀는 얌전히 미시오에게 다가와 안겼다. 미시오는 마코토가 돌아갔을 언덕 쪽을 바라봤다.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이 마치 그녀 같았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 아이들처럼 참 착한 아이네요.”
미시오는 까마귀를 안고서 동물병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병원에 가면 당신을 다시 날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까옥-”

“와~ 까마귀다. 까마귀가 미시오에게 안겨있어. 만지고 싶어~”
미나세 나유키는 고양이를 봤을 때와 유사한 반응을 나타냈다. 맹한 표정으로 흐느적거렸다. 길고 푸른 머리가 하늘거렸다. 그런 얼빠진 모습으로 사람에게 안겨있는 신기한 까마귀에 푹 빠져있었다. 유이치 덕에 미시오와 알게 된 후, 여름 방학 때 첫 만남부터 이런 귀여운 친구(?)를 데려오자 나유키는 완전히 맛이 갔다. 나유키는 미시오에게 물어봤다.
“저기~ 얘 만져 봐도 돼?”
미시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하지만, 예전의 허무함 대신 고요함을 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을 거예요. 얌전한 아이니까요.”
“와아~”
쓰윽 쓰윽
까마귀는 조용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나유키는 그 까마귀가 얌전히 자신의 손길을 받아준데다, 검은 깃털이 생각보다 부드러워서 아주 기뻤다. 그녀의 눈이 일자로 변했다. 입에서는 맹한 만족감의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에취!”
“괜찮나요?”
미시오의 걱정스런 물음에 대답하려는 순간, 나유키는 다시 기침을 했다.
“에취! 으으~ 나 너무 슬퍼… 에취-잇!”
나유키는 슬픔에 빠졌다. 왠지 의사에게서 ‘너의 알레르기는 아무리 먼 미래에서도 불치병으로 진단할 거야.’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 어째서 까마귀 알레르기까지… 그런 건…!”
“…힘내세요.”
“으, 응. 파이팅! 이야. 에췻! 으으, 하지만 이건 아니야…”
미시오는 측은한 눈길로 나유키를 바라봤다. 심지어 원인제공자(?)이자 축생인 까마귀의 눈빛마저 미시오의 그것과 유사했으니 어쩌면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황인지도 몰랐다. 미시오는 동물병원 근처에 약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저기, 동물병원 근처에 약국이 있으니 같이 가는 게 어떨까요?”
나유키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으로 될 일은 아니었지만 혹시 까마귀 알레르기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하는 기대는 있었으니까. 눈가에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심히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응, 같이 가자. 에취-!”
점점 일행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하하- 고생하시네요.”
마이와 관련된 ‘마물’에 의한 사고이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던 마이와 사유리는 3학년을 다시 다니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들과 유이치와의 학교생활도 연장되었고, 나유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난 계기도 되었다. 그렇기에 까마귀 알레르기라는 신종(?) 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사유리는 스스럼없이 웃을 수 있었다. 나유키는 한탄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유리는 맞장구를 쳐주고, 조용히 미시오는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샌가 그들에게 이런 모습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익숙한 광경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병원에 간다는 이야기에 까마귀를 잠깐 살펴본 사유리는 다른 제안을 꺼냈다.
“사유리는 이 까마귀 씨를 마이에게 데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겨울의 끝자락부터 알아오기 시작한 그들이었기에 나유키와 미시오는 마이에 대한 것도 알고 있었다. 일찍이 비일상과 연관되어있던 미시오는 금방 마이에 대한 것들을 받아들였고, 나유키의 경우에는 좀 당황해하고 놀랐지만, 곧 마이의 힘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 두 사람은 사유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일어난 ‘그 일’이후 죽은 자도 살려내는 ‘법칙조차 무시하는’ 그야말로 막강, 그 자체이던 마이의 힘은 극도로 약해졌지만, 여전히 그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마이라면 단박에 이 까마귀를 창공으로 보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이를 찾아 나서려는 순간, 사유리가 두 손을 가볍게 모으고 배시시 웃었다.
“일단 약국부터 가야겠죠?”
“에츄!”
일단 약국부터…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약국으로 향하는 길은 한산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도 아니었지만 희한하게 오늘이 더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화하며 걷는 세 사람의 뺨에도 한줄기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마노양은 오랜만에 보네요.”
“네, 그러고 보니…….”
“방학 직전에 시험이 끝났으니까, 다들 시험에 좀 바쁘기도 했고. 아츄!”
더운 날에 기침을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나유키를 바라보고 지나갔다. 사유리는 그런 주변의 분위기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유이치 씨는 요즘 어때요?”
그 물음을 들은 나유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마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유키를 바라봤다. 아마노도 마코토가 사라진 이후에 금방 희망을 찾고선 회복되었던 유이치가 최근 다시 가라앉아 있어서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나유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좀 우울해보여. 오늘도 좀 기분이 우울해보였어.”
나유키는 잠깐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아마 아유의 무덤에 가 있을 거야.”

by 풀잎열매 | 2008/07/13 11:39 | ┗몇 번째의 여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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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여니 at 2008/07/13 15:01
잘봤어요^^ - by 핵나 흐무'ㅠ' 흐무'ㅠ'
Commented by 풀잎열매 at 2008/07/13 20:35
핵나 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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